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동 갑옷 (문단 편집) == 18~19세기 == 이미 17세기부터 대다수의 중동국가들이 갑옷을 포기하고 19세기에는 서구식의 군사개혁을 앞다투어 시작하고 있었지만 [[이란]]의 [[카자르 왕조]]는 장식적인 용도로 여전히 쿨라 쿠드(Khula Khud)투구를 착용하였다. 당시 갑옷을 착용하는 경우는 드물게 있었지만 장식적인 용도였지 실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갑옷을 착용하지는 않았다. [[인도]]가 가장 독특했는데 갑옷을 19세기 초까지 실전용으로 유지한 특이한 케이스였다. 18세기까지만 해도 영국은 인도를 완전히 지배하지 못했고 당시의 인도는 남부의 [[마라타 동맹]]과 북부 [[무굴 제국]]의 내전이 가장 중요했으며, 지방 소국가 군주들간의 분쟁도 자주 벌어졌었다. 특이한 점은 이 18세기의 인도는 대포와 [[화승총]][* 인도에서도 당연히 부싯돌식 머스킷이 들어왔으며, 유럽에서는 사장된 스냅펀스 락 방식으로 제조되었고, 유럽의 플린트락 유닛을 수입하거나 노획해서 적용하기도 하였다. 그러나 인도의 심각한 습기 속에서 부싯돌이 제대로 발화가 되지 않는 사태가 벌어져 인도에서는 속도는 느려도 발화 신뢰성이 좋다고 여겨진 매치락, 즉 화승식을 계속해서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. 물론 [[아프가니스탄]]과 같이 기후가 다른 지역은 부싯돌식을 선호했다.]을 사용하는 근대적 경향을 보이면서도 투창[* 투창의 전쟁 운용은 유럽에서는 14세기쯤 되어서는 거의 찾기 힘든 것이었다.], 도검[* 당시 유럽에서 보병의 도검은 장교나 부사관의 지휘용이었다.], 방패, 활, 철퇴, 코끼리 같은 전근대적인 무기들이 함께 활용되는 기이한 경향을 보였다. 18세기 당시에는 구식에 해당하는 [[경번갑]]인 지르후 바그타르(Zirah Bakhtar)와 함께 신형에 해당하는 챨타 하자르마샤(Chihal'ta hazar masha)가 등장하여 사용되었다. 챨타 하자르마샤는 '천개의 손톱 외투'라는 의미로써 경화시킨 가죽을 벨벳 외투 아래에 고정하고, 안감을 결합하여 복잡한 바느질로 마무리했던 가죽 [[두정갑]]에 해당하는 물건이었다. 여기에 이란식의 [[차하르 아이네]]나 [[Krug 흉갑]]의 양식을 본따 허벅지나 가슴 부분에 철판을 갖다대어 방어력을 높이는 방식을 채택하였다. [[파일:external/pds22.egloos.com/c0063102_4d31877637742.jpg]] 철판이 붙은 것과 붙지 않은 것을 모두 챨타 하자르마샤로 불렀으며, 화승총에 대응하여 등장한 신형 갑옷이라고 할 수 있었다. 이런 것은 물론 숫자가 많은 편이 아니었으며, 완전한 구식인 사슬갑옷(Zirih)과 솜누비 갑옷(kubcha)도 많이 사용되었다. 중세 식의 튼튼한 투구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으며, 이란식의 쿨라 쿠드(Khula Khud), 쇠사슬로만 이루어진 인도 독자적인 경량 투구인 쿨라 지라흐(Khula Zirah), 그리고 솜누비 패딩 모자나 챨타 하자르마샤와 동일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투구 등이 사용되는 경향을 보였다. [[파일:external/s-media-cache-ak0.pinimg.com/0769a6d5e898362d6936e9cfd2c189fe.jpg|width=400]] 쿨라 지라흐의 모습. 1818년 영국이 인도 전토를 수중에 넣으면서 이러한 전근대적 장비의 사용은 종말을 맞게 된다. [[분류:갑주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